
소개
야마구치 모모에
개요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恵, 1959년 1월 17일~)는 1970년대 일본을 대표하는 아이돌 출신의 전 가수이자 배우, 작사가입니다. 현재는 본명인 미우라 모모에(三浦百惠)로 퀼트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속사는 호리프로덕션, 레코드 회사는 CBS·소니였습니다. 가수 활동 시기에는 펜네임 요코스카 케이(横須賀 恵)로 자신의 곡 가사를 썼습니다. 남편은 배우 미우라 토모카즈이며, 장남은 미우라 유타로, 차남은 미우라 타카히로입니다.
경력
1959년 도쿄도 시부야구 에비스에서 태어나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와 요코스카시에서 자랐습니다. 1972년 12월 오디션 프로그램 《스타 탄생!》에서 마키바 유미의 〈회전목마〉를 불러 준우승을 차지했고, 20개 회사로부터 지명을 받아 호리프로덕션과 CBS·소니에 소속되었습니다. 같은 나이의 모리 마사코, 사쿠라다 준코와 함께 '꽃의 중3 트리오'로 불렸습니다.
1973년 4월 영화 《としごろ》에 출연했고, 5월 같은 제목의 곡으로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데뷔곡은 기대에 못 미치는 판매에 그쳐, 두 번째 싱글 〈푸른 열매〉(青い果実)에서 대담한 가사를 노래하는 노선으로 이미지를 전환했습니다. 1974년 〈어느 여름의 경험〉(ひと夏の経験)이 크게 히트하며 이른바 '푸른 성 노선'으로 절대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 곡으로 NHK 홍백가합전에도 출연했습니다. 인터뷰에서 '여자아이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질문을 받으면 늘 '진심'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같은 1974년 문예 영화 《이즈의 무희》에 주연으로 출연해 연기로도 인정받았습니다. 상대역 미우라 토모카즈와는 글리코 광고에서 먼저 호흡을 맞췄으며, 두 사람은 '골든 콤비'로 불렸습니다. 영화 주연작은 13편이며 그중 12편이 미우라와의 공연작입니다. 1973년 10월 TBS 드라마 《얼굴로 웃어 줘》로 첫 레귤러 출연을 했고, 1974년 10월부터는 '붉은 시리즈'에 주연으로 출연해 마지막 작품 《붉은 사선》까지 6작품에 출연했습니다.
1976년 싱글 〈요코스카 스토리〉(横須賀ストーリー)부터 아키 요코·우자키 류도 부부의 작품을 부르며 새로운 경지를 열었습니다. 부부의 제공곡은 싱글과 앨범을 합쳐 69곡에 이르며, 이 두 사람을 지명한 것은 주변 스태프가 아니라 본인이었습니다. 1977년에는 제6회 도쿄 음악제에서 〈꿈의 안내인〉으로 동상을 받았고, 1978년 제29회 NHK 홍백가합전에서 홍팀의 마지막 주자를 맡았습니다. 10대 가수로는 최초였고 최연소 기록은 깨지지 않았습니다. 브로마이드 판매에서는 1976년 여성 1위였습니다.
1979년 10월 오사카 공연에서 미우라와의 교제를 밝혔고, 1980년 3월 7일 약혼 발표와 함께 연예계 은퇴를 공표했습니다. 1980년 9월 자서전 《푸르른 때》(蒼い時)를 출간해 200만 부를 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1980년 10월 5일 일본 무도관에서 열린 파이널 콘서트에서 마지막 곡 〈이별의 저편에〉를 부른 뒤 무대 중앙에 마이크를 놓고 떠났습니다. 같은 해 11월 19일 미우라 토모카즈와 결혼했고, 이후 공개 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음악적 스타일
장르는 가요곡, 엔카, J-POP으로 분류됩니다. 청순한 외모와 대담한 가사의 간극이 독특한 매력이 되었고, 이는 소속사와 레코드 회사의 이미지 전략의 산물이기도 했습니다. 초기에는 센게 가즈야·도쿠라 슌이치 콤비의 곡을 불렀고, 이후 우자키 부부의 작품으로 자신의 세계를 확립했습니다. 대표곡으로 〈요코스카 스토리〉, 〈꿈의 안내인〉, 〈이미테이션 골드〉, 〈코스모스〉, 〈플레이백 Part 2〉, 〈좋은 날 떠나는 여행〉 등이 있습니다.
